주요 사건의 의미
양동이에 잉크 묻은 손을 씻다가 잉크 방울이 물에 퍼져 나가는 것을 보고는 피라고 생각한다. 파란 명주실같이 풀려 나는 그 잉크 물을 보고 잉크가 손 끝에 묻은 것이 아니라 생활하다 입은 상처 때문에 내부에서 피가 흘러 엉겼다가 물에 풀리는 것이라는 연상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원시인 같은 한 사나이의 얼굴을 본다. 직접 사냥은 하지 못하고 남들이 먹다 버린 더러운 내장을 얻어 먹는 원시인에 비유한다. 이러한 것은 회계에 관한 검사, 조사, 감정 등을 직업으로 하는 계리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의 것은 없는 주인공의 직업과 비슷하다고 본다. 이 작품 전체적으로 깔린 가자! 가자!라는 어머니의 외침 '가자'라는 외침은 라이트모티프로 기능한다. 라이트모티프란 '작품 전개 중 여러 차례 반복되는 소절'을 뜻하는 음악 용어이다. 특히 이 작품의 중간 중간에 이 외침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증진시킨다. 철호가 마을 뒷산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철호의 관점에서 그 심리상태를 재구성해 보겠다. : 좀 춥기는 해도 나는 집안보다 이곳이 좋다. 여기에는 풀과 나무,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있다. 그리고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인다. 나는 이곳에 서서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오늘을 잊는다. 나는 잊어야 할 게 너무 많다. "가자! 가자!" 잊으려 하는데도, 어머니의 그 절규 같은 잠꼬대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바람 소리,새소리 속에도 예의 그 '가자, 가자' 하는 절규가 끼어 들고 만다. 나는 그것을 잊어야 한다. 집안의 쌀 걱정, 장작 걱정, 동생의 취직 문제. . . .나는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발 밑에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인다. 술 광고 네온사인이 핑그르르 돌고 깜빡 꺼졌다가 또 번뜩 켜지고, 핑그르르 돌고는 깜빡 꺼지곤 한다. 저 아래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나보다는 행복하겠지. 핑그르르 돌다가 꺼지는 저 네온사인 밑에서는 흥겹게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인생들이 있기에 저처럼 밤늦은 시각까지 네온사인은 돌고 있는 것일 테니까.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본다. 긴 한숨이 나온다. 마침 바람이 불어와 독한 담배 연기가 눈 속을 파고 든다. 움찔, 눈물이 핑 돈다. 다시 어머니의 절규가 뇌리를 파고든다. 칭얼대는 어린 것, 없는 살림에도 늘 바지런히 움직이는 배부른 아내, 술에 취해 한쪽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영호, 값싼 화장품 냄새와 술 냄새로 찌든 명숙이. 바람이 차다. 나는 동굴과도 같은 그 움막 속으로 이제 돌아가야만 한다.
형 철호와 동생 영호의 대립 형과 아우가 서로 가치관의 대립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형을 도덕적이고 소극적 인물로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동생은 가난하게 사는데 도덕과 양심이 무슨 소용이냐면서 그런 양심따위는 버릴 것을 권한다. 철호를 주동인물, 영호를 반동인물로 본다면 이 부분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
동생 영호가 강도 짓을 하다가 잡힌다. 비록 가난을 조금이나마 이겨 보려고 강도짓을 했으나 양심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잡혀 든 영호. 가난함 때문에 한때 비도덕한 마음을 먹고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잡히고 수감된다.
아내가 해산하다 죽는다. 아내의 죽음으로 지금까지 태연하던 철호도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면 깨물던 이빨을 뽑는다. 그리고 나선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하지만 동생도 수감되고 아내도 죽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방황한다. 그리고 자신이 조물주의 오발탄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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